Food for Thoughts

곰탕에 관한 단상

오버이지 2022. 11. 2. 00:01

아주 오랜 전 미국에서 잠시 공부할 때의 얘기다.   우연한 인연으로 한국말 이라고는 '괜찮아' 밖에 모르는 한국인 3세 아저씨와 일본인 아주머니의 노부부가 사시는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편리함 하나로 결정을 해버린 곳이었다.   집은 상당히 낡고 오래되었으며 좁았다.   아저씨는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분이었고 아주머니는 티셔츠 공장에서 재봉일을 하고 있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분들은 경제적으로 그다지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에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자주 보이던 풍경은 한뭉큼의 청구서 비슷한 것을 들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아주머니의 모습과 그 옆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진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하숙집은 아침과 저녁을 제공해 주는 조건이었고 아주머니의 기가 막힌 일품요리들은 꼭꼭 눌러 담은 밥 한 공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비우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의 얼굴을 가지고 계셨던 아저씨는 역시나 영어 교사답게 완벽한 발음과 표현력의 소유자이셨다.  목소리의 톤 까지도 배우 톰 행크스를 닮아있어 무슨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던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가끔 저녁시간에 다 함께 TV를 보고 있자면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등을 긁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여보 나 등 좀 긁어줄래?'라는 어쩌면 아주 원초적인 표현 역시도 내게는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대사로 들릴 정도였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밥상과 아저씨의 친절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난 점점 외국생활의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학교도 힘들었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도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심한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뼈 마디마디가 쑤셨다.   학교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몸까지 아프게 되자 외롭고 슬픈 감정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휴대폰이니 인터넷 같은 것은 없던 시절, 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한국에 국제 전화를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나름 걱정은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프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이런저런 화제를 돌리다가 우연히 집에서 자주 만들어 주셨던 곰탕 얘기가 나왔다.   결국 얘기는 곰탕을 만들어 먹어보라는 결론으로 치달았고 난 어머니의 비법 아닌 비법을 그냥 듣고 있었다.   이미 내 눈앞에는 뿌옇게 잘 끓여진 파가 듬뿍 들어간 곰탕 한 그릇이 펼쳐졌다.   곰탕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꽂히자 이미 몸살 기운이 달아나는 듯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난 아주머니에게 'Korean Oxtail Soup'(꼬리곰탕)을 만들어봐도 되겠냐고 제안했고 그 길로 아저씨와 나는 아저씨네가 잘 가는 정육점에 들러 소꼬리와 잡뼈, 그리고 약간의 양지를 구입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소꼬리는 백인들이 잘 먹지 않는 부위여서 가격이 아주 저렴했다.     구입한 소꼬리는 큰 냄비에 담아 찬물을 부었다.   한국에서 온 비실비실한 아이가 주방 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것을 아주머니는 신기하게 보고 계셨다.

 

gomtang1

곰탕은 뚝딱 만들어내는 요리가 아니다.   첫째도 둘째도 기다림이다.   그것도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기울여 기다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30분에 한 번씩 찬물을 갈아주며 약 3시간 동안 꼬리와 잡뼈의 핏물을 제거했다.   물에 담긴 뼈에서 핏물이 제거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며 내 몸 안의 나쁜 감기 바이러스도 한 올 한 올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어느 정도 핏물이 제거된 뼈를 냄비에 담고 물을 가득 부은 후 센 불에 끓인다.   다시 올라오는 부유물들... 한참을 제거한 후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깨끗이 씻은 후 본격적으로 다시 끓인다.   여전히 기름이 떠오르고, 국물만 따로 식혀서 기름 제거 후 다른 고기와 함께 다시 꼬리와 잡뼈를 투입하고 물을 추가하여 끓이기... 결국 오후에 시작한 나의 곰탕 만들기는 그다음 날 오후에야 끝이 났다.   물론 물에 담그고 끓이고 식히고 다시 끓이고 하는 과정에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요리 과정이라 힘든 것은 없었고 그저 뭔가, 아주 토속적인 음식이 내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야릇한 쾌감이 밀려왔다.   드디어 완성... 다행히 아저씨와 아주머니 께서도 아주 맛있어하셨다.   그 기나긴 요리과정과는 반대로 나는 밥 한 공기를 말아 순식간에 곰탕 한 그릇을 비우고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내 몸 안의 몸살 기운도 비워졌다.

 

누구에게나 소울푸드라는 것이 있다.   허기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배고픔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 몸 깊숙이 자리하는 나를 지탱하는 어떤 에너지의 근원에 필요한 음식... 그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이 내게는 곰탕인 것이다.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하숙집 주방에서 열심히 소뼈들을 매만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 이곳 캐나다에서도 뭔가 방전된 기분을 느낄 때마다 가끔 곰탕을 만들어 먹는다.   한국인들이 즐기는 사골국물이 그다지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다는 연구를 우연히 어디선가 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먹어서 몸에 아주 좋은 영향만을 주는 음식이 얼마나 되겠냐 싶다.   어쨌든 글을 쓰는 내내 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곰탕은 내 영혼의 음식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