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손님
캐나다에서 식당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영업의 가장 큰 핵심은 음식의 맛도 아니고 종업원의 관리도 아니다. 그것은 단골손님의 확보와 유지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에서의 외식사업과 캐나다에서의 그것이 확연하게 다른 이유로 이어진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의 경우, 수많은 식당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어렵지 않게 사라진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 혹은 입소문에 따라서 멋진 인테리어와 새로운 메뉴를 겸비하고 개업하는 식당들의 정보를 알게 된다. 기회가 생겨 친구들이나 회사동료, 혹은 가족 단위로 새로 생긴 가게를 가게 되고 식사를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그 식당의 장단점을 캐내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각자의 평가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된다면 그 이후 지인들과 만날 기회가 생길 때 새로 생긴 가게의 느낌을 퍼 나른다. 그런 저런 소리와 소문들이 흔히 말하는 대박 가게와 쪽박 가게를 만들어 낸다. 아무리 초반 몇 개월 사이에 대박이 난 가게라고 할지라도 수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인테리어와 새로운 메뉴의 가게들로 인해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초반의 그 기운이 사라지기가 일쑤이다.
캐나다는 거기에 비하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곳 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온 사람들은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르다.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과 제공받는 쪽의 관계가 아니라 그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간다고나 할까? 어떤 가게가 오픈하고 그 가게에 발을 드리우는 손님들은 그 횟수를 늘려가며 가게의 공간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식당을 예로 들면 물론 입맛에 맞는 메뉴가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일단 마음에 드는 가게가 생겨나면 점차 이용 횟수를 늘려가며 자신의 외식 패턴을 그 가게와 맞추어 나간다. 그리고 종업원은 물론이고 가게의 오너와도 점차 그 친분관계를 넓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식당을 하는 입장에서 그런 손님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우리 가게의 경우 내가 인수하기 전 주인, 그리고 그 전전 주인이 보유하던 몇십 년 전부터 가족들 모두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주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그들은 가게 주인인 나보다 우리 가게에 대해 더 잘 아는 고객들이다. 솔직히 처음 내가 인수를 한 후 그들도 우리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해 따져보고 재 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평가기준에 통과가 된 후 그들과 우리는 앞으로 오랜 시간 또 다른 단골 가족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가게에 오랜 시간 발길을 들여놓는 단골손님들 대부분은 같은 특징을 가진다. 그들 모두는 나와 아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수많은 삶의 이벤트 중에서 우리 가게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 변함없는 패턴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듯하다.
식당 비즈네스는 객단가와 회전율, 비용 삭감과 절세등이 기본이다. 새로운 고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마케팅 역시 무시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전략의 중심에, 가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과 뿌리는 단골손님들 과의 두터운 신뢰라는 것은 굳이 이곳 캐나다가 아니더라도 비슷하리라.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두터운 인간관계에서 실마리는 풀리게 되어있다.
이곳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이래저래 이십여 년이 지났고 내가 운영하는 식당도 서너 번 바뀌었다. 그 시간 속에 우리 단골손님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되는 ‘죤'이라는 분이 계시다. 내가 첫 번째 가게를 오픈하던 이십여 년 전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이고 지금 현재의 위치에도 매주 한 번씩 점심식사를 드시러 오신다. 그분을 처음 뵌 건 그분이 막 은퇴를 한 육십 세 때였고 지금은 팔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요즘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을 수영을 하는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이시다. 그분의 루틴 속에는 오랜 시간 습관으로 몸에 베인 우리 가게에서의 점심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식사를 마친 죤 과 꽤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그분의 몇 안 되는 친구들 중에 최고로 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분은 내게 있어 VIP 고객 임에 틀림없지만 그날 이후 캐나다에서 만나게 된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지난 이십여 년간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가게를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손해 등등은 그저 일상처럼 내게 닥쳐오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하더라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깊은 인연과 관계가 그 모든 어려움을 상쇄시킨다는 사실을 오늘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