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s

돈가스 에 관한 단상(1)

오버이지 2022. 10. 3. 22:25

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연수를 마치고 일본 오사카에서 첫 직장생활을 할 무렵의 일이다.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월세 아파트를 계약한 나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다.   회사 업무 이외에는 친구도, 만날 사람도, 딱히 할 일도 없던 나는 그저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한 이방인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주로 같은 부서 직원들과 회사 근처의 라면집이나 건물 1층에 자리한 조그마한 경양식집을 이용했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경양식집을 운영하는 아저씨이다.

 

돈가스단상1/1

 

 

난 그 경양식집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주문하는 음식은 한가지... 매일매일 바뀌는 '히가와리 메뉴'라는 세트메뉴가 그것이다.   큼직한 접시 위에 그날의 메인 메뉴와 샐러드, 약간의 파스타, 그리고 밥이 올려져 나오는 것이었고 그날그날 바뀌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 덕분에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어 언젠가부터 회사를 출근할 때는 가게 앞 칠판에 적힌 그날의 메뉴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시절 나는 특히 데미그라스 소스가 얹어진 햄버거 스테이크를 특히 좋아해서 칠판에 그 메뉴가 적혀있는 날이면 점심시간이 기다려져 아침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오피스 밀집지역에 위치한 그 가게는 정신없이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면 저녁은 항상 한가했다.   우리가 '마스타'라고 부르던 오너 셰프는 저녁이면 혼자서 다음날 준비를 하며 간혹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맞았다.

 

 

돈가스단상1/2

 

 

하루는 퇴근을 하여 자전거에 오른 나를 마침 가게 앞 화초에 물을 주던 마스타가 불러 세웠다.

"내일 돈가스로 쓸 고기를 손질하다 남은 부분이 있는데 괜찮다면 시식이라도 해보지 않을래?"

난 당연히 괜찮았고 시간도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마스타의 돈가스를 먹어볼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게걸스럽게 시식(?)을 하며 가게문을 닫은 후 늦게 까지 마스타의 말동무가 되었다.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마스타는 한국의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필두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았고 나는 마스타의 관심을 끌 화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날따라 마스타는 기분이 고조되어 아무나 듣기 힘들다는 마스타 만의 인생 이야기와 장사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구수한 오사카 사투리로 이어가는 이런저런 농담에 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저씨의 인생 얘기에 빠져들다가 어린 나이에 요식업에 뛰어들어 주방에서 힘든 경험을 쌓아온 얘기의 대목에서는 맥주로 오른 취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을 찔끔거린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그날 맛보았던 마스타의 돈가스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생각하면 침이 고이는 내 인생의 돈가스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마스타는 나의 조언자이자 인생선배이자 좋은 친구로 남아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는 가운데 일본에서 만난 마스타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는듯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갑자기 결심하게 된 '이민'... 완전히 새로운 타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갑자기 내 머릿속을 제일 먼저 스치고 지나간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던 오사카의 마스타 아저씨였다.   캐나다로의 독립이민이 결정되고 이것저것 정리와 준비를 하던 밀레니엄 서기 2000년... 나는 원대하다면 원대하고 황당하다면 황당한 꿈을 꾸고 있었다.   캐나다라는 멋지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만의 조그마한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막연하게 가게를 연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 범위를 좁히게 된 것에 마스타의 영향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소위 말하는 일본의 장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그 아저씨 역시 평생을 음식업에 종사하며 어렵게 자신의 가게를 가질 수 있었고 풍요롭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성실한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만난 마스타의 모습에는 사실 아저씨의 지나온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알았던 그 당시의 아저씨의 평안한 얼굴은 수많은 경험과 반복된 일상의 중첩된 세월의 결과물이었으리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문 앞에선 나는 앞으로 펼쳐질 내 삶에 마스타의 걸어온 길을 오버랩시키며 살며시 주먹을 쥐어졌던 기억이 난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