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s

돈가스 에 관한 단상(2)

오버이지 2022. 10. 8. 22:39

내 머릿속 상상의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캐나다라는 곳에 온 가족을 데리고 살러 가면서 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직접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요식업 분야를 선택한 것이다.   이민을 준비하며 무언가 전문점 적인 요소가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스치며 떠오른 기억이 그 옛날 마스타가 해 주었던 돈가스였다.   마침 돈가스 전문점 사업을 위한 요리학원 단기 코스가 눈에 띄었고 그날로 등록을 마친 나는 돈가스의 고기 손질부터 소스 만들기까지 전반적인 기초를 배웠다.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 입속에 집어넣고 그 음식이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야릇한 성취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tonkatsu2/1

이민을 와서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내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지 이외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심지어 그 대가를 지불해 주는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신선한 돼지고기의 탱탱한 살결을 손질해 밀가루 계란 빵가루로 옷을 입혀 기름에 금방 튀겨낸 고기를 홈메이드 소스와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내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인 돈가스... 다행히 그 당시한 해도 이곳 캐나다에서 돈가스 전문점이라는 곳을 찾아볼 수 없었던 때라 우린 오픈하자마자 '원조'가 되었고 '돈가스 하면 그 집'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지금껏 제각각 다른 성격의 식당을 운영해 오면서 돈가스 만은 꾸준하게 메뉴에서 지우지 않고 만들고 있다.   어쩌면 지나온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가 한 분야의 일에 가장 오랫동안 매달려 온 것은 아마도 돈가스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짠 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tonkatsu2/2

 

이곳 캐나다에서 내가 사는 앨버타주는 소고기로 유명하다.   차를 타고 서쪽으로 조금만 달려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거래하는 정육점에서 금방 손질한 고기를 사다가 도마 위에 올려 만져보면 그 온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붉은 것도 아니고 분홍도 아닌 그저 살색이라고 밖엔 표현방법을 찾기 어렵다.   요리는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등심 고기의 지방 부위를 살짝만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고기 테두리에 칼집을 넣어 고기가 기름에서 휘는 것을 방지한다.   소금과 후추는 한 면에만 살짝 뿌린다.   곱게 거른 밀가루 위에 고기를 굴린 후 불필요한 가루는 털어낸다.   골고루 잘 저어 준비해 놓은 계란 물에 살짝 담근다.   빵가루는 일반적인 식빵보다는 프렌치 바게트를 쓰는 것이 좋다.   식빵은 설탕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기름에서 빵가루가 타는 경향이 있다.   바게트는 당도도 낮을뿐더러 입자가 단단하게 살아 있어서 튀김의 바삭거림을 도와준다.   기름은 180도의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름 용량이 넉넉해야 한다.   이 즈음에서 돈가스는 왜 사 먹는 것이 맛있는지 밝혀진다.   집에서 팬을 달군 기름은 온도 유지가 어렵고 고기가 기름 안에서 놀기에도 용량이 넉넉하지 못하다.   어쨌든 다시 요리로 돌아와서, 빵가루는 고기에 빈틈없이 묻혀야 한다.   이제 180도로 세팅된 튀김기에 고기를 투입한 후 타이머를 누른다.   시간은 5분... 5분 동안 앞뒤로 한 번씩만 뒤집어 주며 기름 안에서 자유롭게 놀게만 해 주면 된다.   기름에서 꺼낸 고기는 망에 바쳐 여분의 기름이 빠지게 한 후 2분 동안 그대로 놓아둔다.   이 동안 기름에서 갓 나온 고기에 골고루 온도가 전달되어 덜 익지도 더 익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   이제 잘 드는 칼로 써는 일만 남았다.   2Cm 정도의 간격으로 썬 고기와 곱고 얇게 썬 양배추, 그리고 홈메이드 소스를 곁들이면 끝이다.

 

tonkatsu2/3

 

세월이 흘러 지금 돈가스는 우리 가게의 메인 아이템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이곳에 사는 일본 분들이나 한국 분들에게는 정통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요식업이라는 일을 하고 살지 모르지만, 돈가스는 내 인생의 음식이고 내 초심의 중심에 항상 자리한다.   건강 지상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튀김요리는 적이다.   하지만 바삭하게 갓 튀겨낸 돈가스의 첫 식감과 그 안에서 녹아드는 부드러운 고기의 육즙을 거역하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바쁜 와중에도 내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시던 마스타 아저씨가 오늘따라 많이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