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고 고치고 또 망가지고…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어제는 순식간에 주방이 물바다가 되었다. 하수관 어딘가가 막혀 역류되면서 터져 나온 물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흘러나왔다. 항상 그렇지만 그런 사고는 하필이면 식당이 가장 바쁘게 돌아갈 때 터지고 만다. 급한 대로 카턴박스를 펼쳐 바닥을 덮고 대걸레로 하수관 근처를 막으면서 바쁜 런치시간에 밀려드는 주문을 쳐내야 했다.
식당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싱크대에서 흘러나가는 물은 일단 ‘그리스 트랩', 즉 기름과 찌꺼기를 하수구를 통해서 못 내려가게 하는 장치에서 걸러진다. 하수구 배관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물이 새어 나오는 원인은 그리스 트랩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 달에 한번 이상 그리스 트랩을 청소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청소이지 그리스 트랩의 뚜껑을 열면서 나오는 냄새는 맡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이 불가한 그런 역대급 오물냄새가 난다. 오랜 시간 청소를 해 와서 익숙해진 나 조차도 아직도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물론 청소를 마치고 깨끗해진 트랩의 뚜껑을 닫을 때는 뿌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청소를 해도 혹시 어딘가의 파이프 밸브 쪽이 갑자기 막힐 수가 있고 일일이 열어 뚫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업자를 불러 대대적으로 파이프 청소를 할 경우도 허다하다.
하수구 문제는 식당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고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음식을 다루는 영업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설비는 냉장고와 냉동고이다. 주방에서 차지하는 공간으로도 웅장한 존재감을 차지하는 이 말썽덩어리들은 번갈아가며 내 속을 썩인다. 물론 아주 오래된 녀석들이라 언제 가동을 멈추어도 할 말은 없지만 우리 가게의 협소한 구조 상 새로운 설비로 교체하기도 아주 힘들기에 가게를 인수한 이후에 여러 번 컴프레서를 교체하면서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다. 난 아침저녁으로 가게문을 열고 들어올 때와 문을 닫고 나가기 전에 꼭 그들의 상태를 강박적으로 체크한다. 모터의 소리를 듣고 온도를 체크하고 문 손잡이를 다시 당겨 냉기의 유실을 막는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돌보는 나의 움직임은 요양병원의 간병인을 방불케 하리라. 나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냉장고와 냉동고는 수시로 고장이 나고 나는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고쳐 보려다 결국은 기술자를 부르게 된다. 캐나다는 고 인건비의 나라이다. 일단 업체와 연락이 닿아 기술자가 오는 순간부터 설비가 고쳐지는 것과 상관없이 출장비가 발생하고 그 이후부터 문제를 점검하고 원인을 파악해 나가는 모든 시간이 나의 비용이 된다. 물론 요즘은 냉장고의 경우 중국사람이 운영하는 업체에 맡기다 보니 출장비 자체는 받지 않아 다행이지만, 디쉬워셔나 실내의 냉온방 문제로 규모 있는 업체를 부를 경우 설비가 고쳐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꼼꼼하고 철저하게 출장비와 인건비와 주차비등이 계산된다.
서비스업 이란 손님이 최우선이란 건 두말하면 숨 가쁘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우리 가게를 골라 찾아주신 고마우신 분들께 가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불편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난여름 이곳 캐나다에서는 좀처럼 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때, 냉방장치가 고장 났다. 환풍기에서 신나게 흘러들어오는 바람은 뜨끈한 열기를 실은 온풍이었다. 냉방이나 온방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술자를 급하게 불렀지만 이미 여기저기 다른 가게에서 이미 S.O.S 콜을 받은 상황이라 일주일 후에야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불편해하는 손님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항상 나름 최고의 서비스를 추구한다는 것에 자존심을 걸고 있던 나는 냉방이 고 처질 때까지 가게문을 닫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왜 하필 이런 일들이 날이면 날마다 발생하는지 짜증이 폭발하면서 나는 나를 코너로 계속 몰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아내는 한숨 쉬는 나와는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선풍기를 가져와 설치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학교 앞 분식집도 아니고 선풍기 라니… 손님들이 불편해할 바에는 그냥 일주일 동안 휴가나 다녀오자고 아내에게 투정을 부렸지만 소용없었다. 부부 행복의 유일한 비결을 ‘아내의 생각과 말이 다 맞다'로 정해놓고 사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선풍기를 여기저기서 돌리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아내는 일일이 양해를 구했다. 손님들은 우리 가게의 상황을 100% 이해해 주었고 심지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난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냉방이 고쳐지고 내 근심도 고쳐졌다.
나의 작은 가게는 나의 작은 회사이다. 아무리 자영업이지만 가게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가게가 될 수 없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이 우선이지 해석해서는 안 된다. 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 역시 나를 찾아오는 것 같지만 내 회사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거기에는 자존심도 필요 없고 갑을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오늘도 여기저기서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 오랜 경험이 만들어 놓은 나의 안테나는 그 문제들을 가능하면 빨리 감지해 나간다. 그렇게 가게는 유지되고 발전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