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자영업

보통으로 완벽한 맛

오버이지 2024. 5. 18. 23:00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레스토랑 10선'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 맛을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정말 죽을 때가 얼마 안 남은 사람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피라미드이나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사진 찍듯 ‘나도 거기 가 봤다'식의 인증샷을 건지려는 사람들로 예약이 붐빈다.   식당의 벽면은 셀러브리티들의 사진과 서명으로 장식되어 있고, 흔히 말하는 스타셰프가 주방뒤에서 흘금흘금 보이고, 미셸린의 별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그런 가게는 식당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가게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정도 찾게 되는 가게이기를 바란다.   아니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하는 가게라도 사람들 마음속에 어떤 식으로든 각인된 가게이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게의 단골이 되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가끔 찾아가 만족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분명 그들의  삶에 조그마한 활력소가 되는 곳임을 믿는다.   그들에게 각인된 우리 가게의 존재가 일종의 행복요소로 작용해 당장 오늘이 아니더라도 5년 후 10년 후가 되더라도 다음에 찾아올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물론 항상 맛있다고 평가되는 가게이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저 가끔 떠오르는 가게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에게 약간의 놀라움을 선물하고 싶다.   최신 유행과 자극적인 분위기가 아닌 아주 조그마한 변화들을 기획해서 지속적인 매력을 유지하고 싶다. 

 

 

공부를 마치고 일본 오사카에서 첫 직장을 다닐 때 사무실 1층에 자리한 아주 조그마한 경양식 집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탁월한 그 어떤 특징도 가지지 않은 그냥 그런 식당이었다.   일본의 경양식집이라면 다 있는 함박스테이크, 스파게티, 카레등이 적당히 첨가된 MSG와 함께 조리된 아주 일반적인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그 평범한 가게가 주중의 점심시간이 되면 그 주변의 직장인 들로 북적거렸다.   가격도 저렴했고 서비스도 분위기도 보통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그 식당이 가지는 매력은 매일매일 바뀌는 ‘히가와리' 메뉴다.   몇 가지의 메인요리가 조금씩 조합된 펼쳐진 접시인데 그날그날 식당이 문을 열 때면 가게 앞 칠판에 쓰이게 된다.   그때만 해도 뭔가를 구입할 때 결정장애를 겪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편안한 선택을 하게 되는 메뉴가 아닐 수 없었다.   ‘히가와리 하나!’로 난 매일 밸런스(?) 있는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콤보메뉴 역시 별다른 특징은 없었지만 한 가지 … 주인아저씨의 어머니가 만드신 쯔께모노(일본의 전통 피클 같은 것)가 곁들여 저 나왔는데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식당은 언제나 붐볐고 주인아저씨와 사모님 이외에 바쁜 점심시간에는 동네 아주머니를 아르바이트로 썼다.   저녁시간은 한가해서 언제나 아저씨 혼자서 가게문을 열고 있었고 그 당시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던 나는 주방 안에서 뭔가 분주하게 만들고 계셨던 썰렁한 가게를 가끔 찾았다.   카운터에 놓여있던 만화책을 들추며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몇십 년이 지나 우연히 오사카에 들렸을 때 그 가게를 찾았으나 경양식집은 없어지고 커피숍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도 가끔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히가와리'가 생각난다.   수많은 선택에 치이고 몰리는 일상 속에서 그냥 눈 감고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 그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 편안하게 안길수 있었던 그 가게가 그리워진다.   그곳은 내게 보통으로 완벽한 맛을 가진 식당이었다.   나는 우리 가게가 누군가에게 최고의 장소로 기억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약간의 특별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무언가와의 접점이 있어 완벽한 맛으로 각인되길 희망해 본다.   내 외로움을 진심으로 달래주시던 아저씨의 모습을 그리며 오늘도 주방의 불을 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