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ood for Thoughts

쌀에대한 단상 (1)

나는 이곳 캐나다에서 음식장사를 하며 살고 있다.   멋모르고 시작한 이 일이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겼다.   물론 처음 이민을 와서 요식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 일을 이렇게 까지 오랜 시간 동안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뭔가 대박 나는 장사로 돈을 벌어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꿈꾸는 주유소 나 조그마한 모텔을 운영하는 느긋한 사장이 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나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장사를 위한 중요한 요소인 타이밍과 위치, 그리고 마케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빠릿빠릿하지 못한 내 성격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자금에 시달려 힘든 고비도 많았고 종업원들과의 인간관계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어느덧 나는 음식장사에 대해 이런저런 철학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철학은 간단하다.   나는 음식을 만들고 내가 만든 음식은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맛을 제공한다.   이 거역할 수 없는 즐거움이 오늘도 가게문을 힘차게 열 수 있는 원동력이다. 

 

rice1/1

 

음식장사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노동이고 어떨 때는 중노동이라고 생각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TV에서 보이는 스타 셰프들의 현란한 손동작과 접시에 펼쳐지는 거부하기 힘든 식용 예술작품들 역시 중간중간 여러 단계의 노동이 숨겨져 있다.   다른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음식 역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일정한 퀄리티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주 심플한 요리라도 안에는 장보기, 손질하기, 씻기, 조리하기, 보관하기, 치우기, 버리기가 숨어있다.   그것이 재료 하나하나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음식물로서 손님들을 만족시킨 남은 쓰레기 들의 행방까지 생각하면 마치 하나의 생명체가 엮어내는 생로병사가 안에 있다고 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이곳 회사의 직장인들이 아침 업무를 마치고 커피 브레이크를 찾을 아침 10시경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랫동안 몸에 습관은 주방에 들어가기 전의 절차를 무의식적으로 진행시킨다.   신발을 갈아 신고 가운을 입고 앞치마와 두건을 쓰고 화장실을 점검하고 홀의 불을 켠다.   주방에 들어가면 우선 냉장고, 버너, 프라이여, 디쉬 워셔 등이 밤새 안녕한지 점검한다.   예약 손님들의 수를 확인하고 손질할 재료 들을 냉동고에서 꺼내 해동시킨다.  그러고 나서 밥을 준비를 한다. 

 

rice1/2

 

우리 가게는 메뉴의 특성상 종류의 밥을 지어야 한다.   크림소스나 토마토소스가 베이스가 되는 새우나 생선 요리에는재스민 이라고 하는 태국산 쌀을 쓴다.   가늘고 길쭉한 쌀은 칼로리와 맛이 가뿐하여 밥이 고슬고슬하게 지어지는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다소 특이할 있으나 사실 종류의 쌀이 세계 생산량의 90%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이탈리아 만이 우리에게 익숙한 단립종의 쌀을 먹는다고 하니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입맛이 특이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재스민 쌀의 은은한 향과 식감은 우리 가게 간판 메뉴 소스와 어우러지는 관계로 밥솥에 밥을 짓는다.   그리고 작은 밥솥에는 흔히 경기쌀이라고 부르는 캘리포니아산 우리 쌀로 밥을 한다.   돈가스와 회덮밥 같은 메뉴는 아무래도 찰지고 윤기 나는 우리 쌀이 최고이다.

 

 

쌀통을 열고 쌀을 계량하는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무언지 모르는 경건한 공기가 감돈다.   바깥 소음이 갑자기 차단되는 도서관 연람실이나 절에서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를 마주할 때의 엄숙함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주문을 외우듯 옮겨 담은 쌀을 가지고 개수대로 향한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맞추고 쌀을 씻는다.   손목을 돌려 우선 건조했던 쌀에 수분을 공급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쌀알들을 느끼며 살며시 정성껏 쌀을 씻는다.   흿뿌연 쌀뜨물을 어느 정도 투명해질 때까지 번이고 개수대로 흘려보낸다.   밥솥에 그어져 있는 선에 맞추어 물을 잡기는 하지만 항상 마지막은 손을 펼쳐 쌀과 물의 높이를 재어보아야 한다. 재스민 쌀과 경기쌀은 쌀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물을 머금는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손바닥에서 손등까지의 물높이라는 다소 원시적이지만 감각적인 방법을 포기하지 못한다.   전원을 꼽고 밥을 안치고 나면 본격적인 영업준비가 시작된다.   (2편에 계속)

'Food for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징어 에관한 단상  (0) 2022.10.21
모모카레  (0) 2022.10.20
쌀에대한 단상 (2)  (0) 2022.10.17
돈가스 에 관한 단상(2)  (0) 2022.10.08
돈가스 에 관한 단상(1)  (1)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