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칼로리가 아주 높은 곡류인 쌀은 그 잉여생산물을 이용해 세계 문명을 발전시켜온 귀중한 농경 작물이다. 여기서 쌀의 역사를 논하거나 영양가치를 얘기할 생각은 없다. 어찌 되었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쌀을, 그러니까 밥을 먹어왔고 먹을 것이다. 흔히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우리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닮아 있다고 봐야 한다. 외향적이던 내성적이던 느긋하던 신경질 적이던 밥을 먹고사는 우리는 결국 어딘가에는 닮은 구석이 있으리라. 수십 가지 반찬이 차려지는 일류 코스요리에도 결국 밥이 함께하고 날계란 하나와 간장 한 방울을 가지고도 어떻게 해서든 밥을 먹는다. 밥 먹고 살기 위한 일상이라기보다는 그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한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사실 모든 것은 밥을 안치는 순간 내 손에서 벗어난다. 밥솥에서 증기가 배출되고 뜸이 들여지고 쌀 한 톨 한 톨이 저마다의 찰짐과 꼬들꼬들함을 머금고 일정한 부피로 팽창한다. 하지만 쌀이 밥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할 시간도 없다. 식당의 아침 준비는 전쟁이다. 재료를 손질하고 소스를 보충하고 오일을 갈고 설비를 가동하는 가운데 밥솥은 주방 구석에서 열심히 밥을 짓고 있다. 취사가 완료되고 어느 정도 뜸 시간이 지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밥솥을 연다. 아침에 쌀을 꺼낼 때의 엄숙함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밥을 저어 섞을 때에도 다시금 경건해진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오늘 지은 밥과 좋은 합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 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부디 좋은 기운이 전해지길 기원한다.
우리 가게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특성상 점심때가 바쁘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몰려드는 직장인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한 끼를 마쳐야 한다. 같은 메뉴의 음식이라도 밥을 먹는 방법은 제 각각이다. 음식이 서브되면 소스에 바로 밥을 마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섞어 먹는 손님과 밥은 밥대로 간장에 비벼 먹는 손님들도 있다. 점심 러시아워가 끝나고 뒷마무리가 끝나는 오후 3시경에 우린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밥은 주로 전날 남은 밥을 데워먹는 일이 많다. 전자레인지라는 놀라운 기기 덕분에 찬밥 신세를 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밥 얘기를 한다. 3번 테이블 손님이 밥을 어떻게 먹었고 하는 약간의 반성회 비슷한 얘기부터 새로 생긴 식당에 밥은 어떻게 나오고 하는 정보 아닌아닌 험담 비슷한 얘기들과 함께 나는 밥 한 공기를 비운다. 심지어 밥을 지금 잘 먹으면서 요즘 경기가 안 좋아 밥 먹고 살기 힘든다는 얘기를 하고 식당 창밖으로 우연히 지나가는 아랫배가 심하게 나온 아저씨를 보고 밥맛 떨어진다고 까지 한다.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제 차 한 잔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다시 저녁밥을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나의 심플한 일상이다. 이 일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 덕분에 ‘내가 먹고사는 일’이다. 나는 우리 가게가 최고의 맛으로 평가되는 것도 좋지만, 그냥 가끔씩 생각나고 들려보고 싶어 지는 평범한 가게 이길 바란다. “거기 이번에 새로 오픈했는데 인테리어가 장난 아니래…”아니래…”라는 루머가 도는 곳보다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오늘은 그냥 그 집 가서 카레라이스나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욕심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각종 식당 정보와 리뷰 등을 검토하고 조금이라도 평이 안 좋은 곳은 가급적 피한다. 가장 1차원적인 일이기에 가장 민감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음식재료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쌀 한 톨에도 자연과 인간과 과학이 압축되어 있다. 내게 주어진 쌀로 밥을 짓는 일이 경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한 그 쌀이 만들어지는 시간 속에 묻어있는 농부들의 땀방울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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