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20년이 넘게 몇 군데의 식당을 운영해 오면서 가게 위치도 바뀌고 종업원들도 바뀌고 메뉴도 수없이 바뀌어 왔지만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맥주의 종류일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밥집이고 술을 메인으로 취급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한 종류의 생맥주 만을 공급해 왔다. 물론 병맥주와 와인 등은 국내산 수입산을 골고루 판매하고 있지만 생맥주의 경우 단 한대의 디스펜서에 설치하고 있어 유행이나 특징과 관계없이 나의 취향의 한 종류의 맥주를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다. 손님들 중에는 자기 취향의 맥주가 아니라며 불평하는 분들도 계시고, 다른 주류업체에서도 신제품을 가지고 영업사원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나는 마치 내가 좋아서 내가 마시는데 왜 난리인가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사는 이곳 앨버타에는 BIG ROCK이라는 맥주 공장이 있고 우리 가게는 그곳에서 만드는 TRADITIONAL이라는 생맥주를 받아서 판매한다. ‘트래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맥주는 적갈색을 띠는 에일 맥주이다. 20여 년 전 이곳에서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 가게의 전 주인이 판매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서 시작한 것이 ‘트래드'와의 단순한 인연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생맥주는 서울의 호프집 같은 곳에서 500CC 잔에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맥주 종류가 수없이 많고 세계 곳곳에서 제조되는 다양한 수제 맥주들이 선보이고 있지만, 20여 년 전의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맥주는 뭔가 부족한 그냥 그런 맥주였다. 맥주에 대한 기대치가 한없이 낮았던 내가 그때 처음으로 ‘트래드'를 마시고 받았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묵직하고 쌉쌀한 에일 맥주의 독특한 맛과 그 청량감은 한마디로 맥주의 신세계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트래드'는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약간은 올드한 맥주가 되었고 이곳에서도 수없이 많은 수제 맥주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본 정말 맛있었던 맥주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트래드'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 가게는 ‘칼라마리' 라고 부르는 오징어 튀김이 대표 애피타이저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 시내에서 칼라마리 가장 맛있는 집이라는 소문이 도는 정도로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감사하기 그지없는 메뉴이다. 일반적으로 칼라마리라고 하면 동그란 링 모양으로 튀긴 오징어를 마요네즈와 흡사한 타르타르소스나 요구르트 풍의 소스와 함께 내는 요리이지만 우리 가게의 경우 오징어 살에 칼집을 넣어 큼직하게 썰어 아주 얇은 튀김옷으로 고온에 금방 튀겨 우리 가게 특제 소스인 고추 마늘소스를 곁들여 낸다. 물론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가게를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메인 요리로 무엇을 시키던 우선은 칼라마리를 주문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효자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기억 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그것이 가끔씩 가게를 찾게 하는 이유가 되는 그런 메뉴를 우리는 항상 감사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나는 맥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못되고 가끔 반주를 하거나 지인들과 모임이 있을 때도 와인을 선호한다. 잘은 모르지만 내 몸에서 흡수되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맥주는 와인에 비해 작동이 느린 것 같다. 하지만 내 체질과 상관없이 내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조합이 우리 가게의 생맥주 ‘트래드'와 칼라마리이다. 더운 여름날 파티오에서 즐기는 한잔의 맥주와 한 접시의 칼라마리는 내가 가게를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강이다. 한국에서는 맥주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치킨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치킨은 이곳 캐나다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중년을 훌쩍 뛰어넘은 나에게 있어 맥주와 치킨은 소화해 내기 버거운 조합이다. 세상사람들이 치맥을 주장해도 나는 역시 오징어에 맥주인 것 같다. 치맥이던 ‘오맥'이던 세상은 환상적인 음식 조합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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