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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의 자영업

혼자 오는 손님

 아주 옛날 일본에서 약 3년 정도 일하면서 지낸 적이 있었다.    회사 주변이나 집 근처에는 조그마한 식당이나 선 술집이 군데군데 있었다.   중심에서 떨어진 일본의 주택가에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 공간이 숨 막힐 정도로 협소해서 가게를 들어가는 순간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오너의 인사를 받는다.   무언가 대화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서먹한 분위기가 흐른다.   물론 웬만한 경우를 제외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의 주인이 먼저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게 된다.   약간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마치 소개팅에 처음 마주하는 거리감과, 하지만 어떻게든 어색함을 수습하기 위해 서로가 노력해 보는 분위기가 흐르기도 한다.   오너와 손님의 첫 대면이 무사히 부드럽게 끝나고,  심지어 음식이 맛있고,  손님은 며칠 후 다시 그 가게를 찾고,  오너가 손님을 알아보고…  그렇게 여러 번 반복이 된 후에는 그 손님은 단골이 된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 근처에는 아주 조그마한 중화요리 집이 있었고 피곤한 퇴근길에 뭔가를 만들어 먹을 기력이 없을 때 들리게 되는 곳이었다.   일본어가 서툴던 나는 한자로 쓰인 수많은 메뉴를 읽을 수도 없었고 항상 가게 입간판에 써놓은 라면세트를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라면과 볶음밥, 그리고 맥주가 한병 따라 나오는 지금 생각하면 탄수화물 폭탄 같은 메뉴였지만 그 당시 내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던 칼로리 원 이었다.   오너 아저씨는 인상이 부드러운 편은 아니었고 말수도 적었다.   어쩌면 그 당시 일본어 회화 능력도 많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만화책을 읽고 음식이 나오면 순식간에 먹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그 당시 나는 그 식당의 단골이었던 샘이다.  

 

작은 가게를 하다 보면 주인인 나와 손님들과의 관계가 밀접해지기 일쑤이다.   공간이 좁기 때문에 음식을 제공하는 쪽과 먹는 쪽의 거리를 두기가 애매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옛날 일본에서의 상황과 정 반대의 위에 놓여있다.   캐나다 시골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나는 영어가 서툰 이민자 출신의 오너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공하는 음식은 한식도 중식도 일식도 아닌 퓨전 요리이다 보니 손님들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인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20년도 넘게 산 우리 부분이지만 아직도 손님들과의 대화는 어느 정도 주거니 받거니가 진행된 이후에는 막히게 된다.   각자가 나고 자란 문화라는 것이 무서워서 영어의 단어와 문법 같은 것과 상관없이 대화에 맛을 넣는 죠크나 관용구 같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날씨에 관한 얘기와 일이나 취미에 관한 얘기, 그리고 가족들 근황을 확인하는 정도가 나의 영어 실력의 한계이고, 간혹 그들이 내게 공감을 구하는 애매한 표현에는 그냥 웃거나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그 자리를 모면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나마 둘 이상이 함께 오는 경우는 손님을 맞는 나 역시 적당히 제삼자가 될 수 있지만, 혼자 오는 손님에게는 무언가 한 깊이 더 1대 1의 관계를 이끌 수밖에 없게 될 경우가 많다.

 

 

우리 가게에는 정말 오랜 시간 혼자 오는 손님들이 몇몇 있다.   대부분의 캐나다인의 경우 비교적 외향적인 미국인들과는 달리 처음 자신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일에 서툴다.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들 역시도 처음에는 어색한 시간들을 지나왔다.   오며 가며 건네고 건네받은 짧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이름을 알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성격인지 까지 파악하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일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여러 테이블에 앉아 여러 가지 메뉴를 접해보고 그들이 제일 선호하는 자리와 음식을 찾아낸다.   우리 역시 그들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 오는 동시에 물어볼 것도 없이 테이블 안내부터 음료수, 식사, 디저트까지 자동으로 준비하게 된다.   혼자 오는 모든 손님과 다 같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님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관계는 돈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사이를 훌쩍 뛰어넘은 각별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혼자 오는 손님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특별한 분이 한분 계시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이곳 캐나다에 처음 이민을 와서 첫 식당을 오픈하고 며칠도 안 지나서 그분은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열었던 식당은 초밥집이었고 그분은 그때 당시 초밥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시골의 전형적인 백인 아저씨였다.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의 그는 그 당시 막 은퇴를 한 60세 정도의 나이였고 우리가 소개한 초밥세트를 문제없이 즐겼다.   그분은 항상 생맥주를 즐겼고 혼자 와서도 책이나 신문을 보는일 없이 그 긴 다리를 테이블 아래로 구겨 넣고 우리 가게와 우리들의 움직임, 혹은 다른 손님들의 테이블을 체크하며 음식을 즐겼다.   가끔 저녁에 와이프와 함께 가게를 찾아오신 것을 제외하면 그분은 항상 점심 고객이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나 역시 몇몇 군데의 다른 가게를 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분은 변함없이 우리 가게의 단골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건강상 맥주 대신 와인, 와인 대신 녹차로 음료수는 변해왔지만 그분의 행보는 한결같다.   자식이 없는 그분은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 까지도 우리와 함께 했다.   80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분은 변함없는 우리 가게의 단골이다.   이제 카페인 때문에 좋아하던 녹차마저 끊고 식사량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안타깝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 가게의 동향과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천천히 우리 음식을 즐긴다.   비록 언어적으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곳에 살고 있지만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나와 내 가족이 발을 디디고 살아온 땅이다.   그리고 내 가게를 통해 맺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은 내가 가진 최고의 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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